숫자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 책에 관한 작은 이야기

[한줄평]
모든 것을 측정하고, 숫치의 잣대로 평가하려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우리는 책

후배들에게 자주 이야기하는 것인데
최근 내가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아마도 예전 글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적었던 것 같은데)
뇌과학, 통계, 인포그래픽 이다.
이 책은 나의 관심사 중에서도 통계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이건 예전부터 나도 궁금했던 것인데
왜 세계적인 신용평가사는 3개 밖에(S&P, 무디스, 피치) 없을까 했는데
이 책을 읽고, 어떻게 3개 회사가 전세계의 신용평가를 장악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던 재미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개발원조나 저개발국(이렇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원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평가가 제대로된 원조를 실행하게 도울 수 있을까 하는 등의 다양한 주제를 언급하고 있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내가 최근에 통계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책에서 말한 숫자가 갖고 있는 통치성, 장악력, 힘에 매료되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근거를 들어서 말하면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그 근거를 숫자로 좀 더 명확하게(그리고 숫자의 출처가 권위있는 기관의 것이라면 더욱더) 표현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들의 주장에 별로 의심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숫자가 갖고 있는(혹은 통계가 갖고 있는) 힘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인사팀에 있으면서
과연 사람의 성과와 역량을 몇 등급으로 나눈 인사고과 평점(예를 들면, A, B, C, D)으로
평가하는 것이 맞는 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적이 있었다.

그때 내렸던 결론이
'그럼 어떻게 평가할껀데, 어차피 누군가는 승진을 시켜야 하고 하는데 그때 무슨 기준으로 할껀데'
이러면서 그래도 최악 보다는 이게 차악(최악보다 한단계 더 나은 악???)이 아닐까 하면 넘어갔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단순히 결론을 내고
최악보다는 나은 차악이라고 자신을 안위하고 넘어가면 안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숫자(통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측정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해서만 숫자가 나온다는 것에 주의를 해야 한다.
만약 부모와 자식 간의(뭐 뉴스에서도 요즘 아빠들이 자식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몇 분이다 식으로 나오긴 하지만) 친밀도를
대화시간이나, 같이 식사한 횟수, 가족여행 횟수 등과 같은 수치로만 측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의 경우는
아들 준서와 같이 놀아주는(사실 이 놀아준다는 기준도 모호하다. 애랑 장난감으로 같이 노는 것이 놀아주는 것인지
아니면 책을 읽어주는 것이 놀아주는 것인지, 단순히 영화관에 데려가서 만화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놀아주는 것인지 등)
방식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놀아주는 시간과 다소 거리가 있다.

아들 준서는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자기 혼자서 새로운 장난감을 구경하는 것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한달에 2~3번은 토이로저스 장난감 가게에 꼭 가는데
이때 내가 하는 일이라곤
준서가 '아빠 이거 멋지지 않아', '아빠 이거 사면 안돼' 이럴때 거기에 대해서 반응해주는 정도이다.
이런 상황이 과연 놀아주는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측정을 하지 않으면 평가도 매우 어렵다.
그래서 통계를 이용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불가피한 상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통계나 숫자에 대한 권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고
그것들의 쓰임에 대한 숙고(혹은 의심)가 없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책이 다소 따분하고 재미없는(원론적인 이야기나 너무 학술적인 이야기들이 조금 섞여 있는 부분)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나 처럼 통계나 숫자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대성당 책에 관한 작은 이야기

[한줄평]
해설을 읽어야 만 그나마 소설의 진의를 조금 알 수 있을까 말까한 책

이 책은 영미 문학에 거장(?)이라고 칭해지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작품을 여러 개 묶어 놓은 책이다.
대성당이라는 단편 외에도 10편이 단편들이 더 묶여져 있는데
솔직히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도
뭔가 어렴풋이 느낌만 전달해주는 그런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책의 맨 뒤에 붙어 있는 해설을 읽으면서
아 이래서 그때 그런 상징들이 이런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이구나 하고 이해했지만
그래도 소설 자체만 놓고 봐서는 감을 잡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난 박민규 작가와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삼미 슈퍼스타즈, 지구영우전설 등 박민규 작가는 딱 내수준(?)에서
소설의 진의가 이해도 되면서 너무 직접적이지 않은 책을 쓰는 작가기 때문이다.

사실 소설이라는 것은
우리의 수준에 따라서 읽켜지는 내용이 달라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같은 책을 초등학생이 읽었을 때와 대학 교수가 읽었을 때는 다른 느낌을 받는 것처럼
소설의 작가가 대중의 수준을 어느정도로 판단하고 소설을 쓰느냐에 따라
우리가 쉽게 받아 들일 수 있는 소설이 되기도 하고
문학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대단한 소설로 불리는 것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내 수준이 너무 낮아서
일반적인 대중들은 이해할만한 것도 이해를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돈키호테와 같은 작품을 읽으면서 감동을 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그래도 일반 대중의 수준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안위를 하기도 한다.

소설의 작가들에게 내가 수준을 낮춰주세요,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써주세요 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렇게 서평을 남김으로써 다른 나와 비슷한 이해수준(?)을 갖는 이들에게
편안하게 읽으면서도 감동이 전달되는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작가들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을 대신해본다.

눈의 황홀 책에 관한 작은 이야기

[한줄평]
눈은 황홀할지 모르지만, 머리는 결코 황홀하지 않은 책.


이 책은 일본에서 디자인으로 꽤나 유명한 저자가 쓴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디자인에 관한 것들이 많고,
특히 책에 사진이나 그림들이 많아서
책을 처음 봤을 때는 금세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다가 보니
책에 너무 많은 주제를 좀 재미없게(?) 소개한 부분이 많아서
책을 다 읽기는 쉽지 않았다.
중간에 그만 읽을까 싶다가도 그냥 다 읽은 책이다.

번역이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저자가 그렇게 쓴 것인지는 몰라도
일본 원제목이 '기원 이야기'라는 것을 고려하면
모든 주제에 대한 기원만을 너무 찾아내려고 한 것이
책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1만 시간의 재발견 책에 관한 작은 이야기

[한줄평]
1만 시간의 법칙을 아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봐야하는 책.

아마도 교육이나 성공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말콤 그래드웰의 '아웃라이어' 라는 책에서 이야기를 해서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법칙인데,
사실 공병호 작가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여기서 1만 시간의 법칙을 간단히 설명하면,
어떤 분야에 최고가 되거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 1만 시간의 연습이나 공부, 혹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1만 시간의 연습기간을 대충 따져보면 10년 정도가 걸리는데,
그래서 이것을 10년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말콤 그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너무나도 책을 잘써서
1만 시간의 법칙은 거의 진리 수준(?)으로 사람들에게 그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단순히 1만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서 전문가나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이야기하는데,
이 책의 저자의 연구를 바탕으로 말콤 그래드웰이 바로 아웃라이어를 썼다는 소리도 있다.
즉,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성공한 사람들을 연구하는 분야에 대가인 안데르스 에릭슨 교수다.

책에서도 저자가 말했다 싶이,
아마도 저자는 아웃라이어라는 책이 너무 잘 팔리고
거기에 있는 내용을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이 우려되어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럼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단순히 1만 시간을 연습하고 공부하는 것은 일정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괜찮겠지만
전문가나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 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테니스를 배우는 사람이 단순히 벽에다가 대고 테니스 공을 1만 시간 친다고 해도
그 사람은 테니스 최고 선수와 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목표 없이, 그리고 '의식적인 연습'이 아닌 단순한 연습은 별반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고가 되려거나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의식적인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의식적인 연습'이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최고가 어떤 방법으로 연습하는지를 먼저 알아내고
그런 방법으로 항상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책에서는 comfort zone 이라고 함) 목표까지 자신을 몰아부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말 자신의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전문가들의 방법으로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 부족하면,
이제 자신만의 방법이나, 아니면 또 다른 전문가를 찾아가 그 한계를 뛰어 넘는 방법을 찾아서 연습하라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적극 추천하는 이유는 위에서 밝힌 저자의 주장뿐만 아니라
책에 나오는 다음 내용을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저자는 선천적으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모짜르트나 절대음감을 갖고 태어난 사람 등),
수학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노벨상 수상자들이나 가우스 등),
운동 재능을 타고난 사람, IQ가 엄청 높은 사람 등
이런 천재적인 사람들이 실제로 천재로 불려지는 데는 정말 유전적으로 타고난 부분 보다는
자신의 잠재력(이건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잠재력과 거의 동일하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을 계속해서
'의식적인 연습'을 통해서 발전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책을 읽는 것이 명확하게 저자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어째는 노력이 참 중요한 요인이다 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책은 내 인생의 책 목록에 들어갈만한 책인지도 모르겠다.

넥서스 (여섯 개의 고리로 읽는 세상) 책에 관한 작은 이야기

이 책은 네이쳐지 편집장으로 있었던 마크 뷰캐년이 복잡계에 대한 이론들을 정리한 책이다.

복잡계라고 하니 뭔가 어렵게 느껴지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렵게만 느껴지는(실제로 복잡계를 연구한다면 무지 어려울 수 있다) 분야는 아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6단계 실험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소위 말해서 전세계 사람들은 평균 6단계 이내에 서로를 알고 있는 사람들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연결되는 고리를 찾아보면
1단계가 바로 우리 형님이 될테고,
2단계는 우리 형님이 알고 있는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이 되고,
3단계는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이 알고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고,
4단계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즉 위의 경우에서 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연결하는데 4단계만에 되었다.

아마 여러분들도 자신과 아주 동떨어져 있을 사람과의 연결이 몇단계만에 이어지는지 해보면
대부분 6단계 이내에 이런 연결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럼 뭔가 궁금하지 않은가?
60억 인구가 넘는 지구에서 왜 꼴랑 6단계만에 모든 사람이 이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런 구조(책에서는 '작은 세계'라고 지칭)가 우리 뇌가 구성되어 있는 구조와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 질병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의 구조, 생태계를 이루는 구조와 같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일전에 강력 추천했던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shadowxx.egloos.com/11176478) 의 내용을 좀 더 깊숙히 다뤘다고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이 책이 구글 신은~ 책의 저자 중 한명인 정하웅 교수의 논문들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구글 신은~ 을 더 추천한다.
물론 이 책도 매우 재미나고 흥미로운 사례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지만
좀 딱딱하게 쓰여진 탓에 끝까지 읽는 데 노력을 좀 들여야하기 때문이다.


세상물정의 물리학 책에 관한 작은 이야기

[한줄평]
사회과학에 물리학을 접목시켰다기 보다는
저자의 다양하고 재미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책

이 책의 부제는 '복잡한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계물리학의 아름다움'이다.
부제만 보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접하기 꺼려하는
통계, 물리학 등이 나오니 이 책은 무지막지하게 수학적이고 물리학의 이야기를 하는 학문적 책이라고 보기 쉽다.
그러나 이 책에서 물리적 공식이나, 수학의 방적식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 김범준 교수의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담겨있을 뿐이다.

책이 담고 있는 짤막한 소재들에 대해서 저자는 4~5페이지 정도로 짤막하게 다룸으로써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했으며,
또한 간간이 통계물리학(이것이 나도 뭔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에 대해서 소재들과 연결하여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식견을 넓힐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들은 어쩌면 우리가 보다 복잡한 문제로 가기 위한
어쩌면 '소개' 정도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이 소개서를 여러분들도 꼭 읽어 봤으면 한다.

채식주의자 책에 관한 작은 이야기

[한줄평]
맨부커 상을 수상한 작품이지만,
내 식견이 모자란 것인지 무엇이 모자란 것인지...
이 소설이 왜 맨부커 상을 수상한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판매되고 있는 채식주의자 라는 책에는 3개의 단편 소설이 엮여 있다.
처음이, 채식주의자이고, 두번째가 몽고반점, 그리고 마지막이 나무불꽃 이다.

이 3개의 단편소설들은 저자가 각각 다른 시기에 쓴 것이지만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 3개의 소설은 그냥 하나의 소설로 연결되어 있다.

소설은 먹기를 거부하는 영혜라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으며
꽤나 재미도 있고, 궁금증도 자아내는 부분이 많아 단시간에 다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그러면 내가 왜 한줄평에 맨부커 상에 대한 언급한 것일까?
그건 소설이 재미있고 의미가 있긴 하지만
내가 느끼고 이해하기에는 맨부커 상을 수상할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문호들이 보는 시각과 그냥 독서를 취미생활로 즐기는 나의 수준이 같을 수 없으니
내가 이 책에 맨부커 상을 줬네 마네 라고 할 처지는 안되지만,
그래도 나와 같은 단순한 독자들이 읽더라고 머리과 가슴을 확 때리는 그런 책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그래서 검색을 통해서 이 책이 왜 맨부커 상을 탔는지 찾아보니 이런 이야기들이 주류였다.

"보편적 주제를 다루어서 성공한 게 아니라 보편적 주제에 고도의 미학적 밀도를 부여함으로써 성공한 것"
"동일한 이야기를 각기 다른 사람이 변주해내는 형식상/구성상의 세련됨"
"타자에 대한 폭력,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탁월한 시적 감수성과 세련된 문체로 묘사했다"

즉,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이 책은 외부의 폭력성에 대한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이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보다는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른 시각과 다른 형식으로 형상화한 폭력에 저항하는 모습을 잘 그려냈다는 것이다.

이런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도 나는 그런 감은 느꼈지만
그것이 처절하게 나에게 박히지는 않았다는 느낌이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책에 관한 작은 이야기

[한줄평]
단순하지만 읽어보면 결코 단순하지 않은 내용을 깔끔하게 다뤘다.

행정이론 서평과제로 읽었던 책이다.
솔직히 행정학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알버트 허쉬만을 들어본 적이 없고
또 허쉬만 교수가 엄청나게 유명하다는 것은 당연히 몰랐다.

책의 원래 제목(Exit, Voice, and Loyalty: Responses to Decline in Firms, Organizations, and States)이 함축하고 있듯이
이 책은 적은 분량과는 달리 결코 만만하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조직이나, 회사, 혹은 국가가 잘못되어 갈 때
과연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깊은 고찰을 담고 있다.

다음은 서평에 적었던 내용의 일부를 여기에 다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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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 퇴보할 때 개인의 선택지는 보통 두 가지다. 조직을 떠나거나(이탈), 조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항의)이다. 기존 경제학 논리대로라면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질이 낮아지면 소비자들은 다른 기업 제품으로 이탈하기만 하면 된다. 질 낮은 제품은 도태되고, 질이 좋은 제품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지만 현실적으로 이대로 일이 전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비스가 형편없는 철도와 비교적 안정적인 버스가 화물운송에서 경쟁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화물운송업자들은 철도운송을 이용하지 않고 버스로 ‘갈아탈’ 것이다. 하지만 철도는 기간산업이기 때문에 도태되지 않는다. 이탈로 서비스의 질은 더 낮아지고, 어쩔 수 없이 철도를 이용해야 하는 이들만 피해를 본다. 철도운송을 이용하며 질을 높이도록 불만을 제기해야만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국 항의와 이탈을 효과적으로 조합할 때 조직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가능성도 커진다. 어떤 조직에서는 항의를 일탈로 규정해 징벌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항의가 관습화해 적절한 이탈의 시점을 놓치기도 한다.

저자는 이탈과 항의의 다양한 조합을 실제 사례와 함께 실험하며 그 한계까지 짚어낸다. 인간이 만든 조직이라면 겪게 되는 필연적인 문제, 퇴보에 대한 답을 탐구하는 고전이라 할 만한 책이다. 책의 부제가 보여주듯이기업이나 조직 혹은 국가가 퇴보의 길로 들어설 때 이를 치유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답하는 것이다. 답은 이 책 제목에 들어 있다. 싫으면 떠나거나(Exit) 아니면 남아서 항의(Voice)하거나 그도 아니면 충성(Loyalty)을 다하는 것이다. 이 책이 높이 평가받는 것은 이와 같은 단순한 방안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다양하게 변용 가능한지 그리고 이러한 방안들을 겸용 내지 혼용할 때 실제 의도와 얼마나 다른 역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사려 깊게 살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부와 같은 공공 부문에 적용 가능한 치유책이 있고, 기업이나 조직과 같은 사적 부문에 적합한 치유책이 있음을 밝히고, 이러한 노력이 가지는 한계 또한 자명함을 알린 데 이 책의 대단함이 있다. 특히 저자는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신자유주의의 원조 격인 시장지상주의 경제학자에게 퇴보의 치유책으로서 이탈이라는 경제적 개념에 못지않게 항의라는 정치적 개념이 얼마나 유용하고 의미 있는지를 역설하고 있다. 허시먼의 결론은 간단하다. 그는 교육이나 대중교통과 같은 공공재의 경우 어설프게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객의 이탈을 억제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훨씬 유용한 방안임을 주장하고 있다. 허시먼이 내린 이와 같은 암묵적인 결론은, 공공재로부터의 이탈은 어려우므로 공공재의 질이 떨어질 때는 항의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항의하지 않고 침묵하게 되면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공공재가 아닌 공공악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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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책에 관한 작은 이야기

[한줄평]
아는 만큼, 그리고 생각한 만큼 보이는 책

유시민 작가(본인 스스로가 이제는 작가라고 불리고 싶다고 해서)가 인생의 책으로 꼽은 책이 바로
지금 내가 서평을 쓰고 있는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이다.

예전 유시민 작가가 쓴 책들 중에서
유 작가가 대학교 시절 동아리에서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삶의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드는데(맞나??? ^^;)
아마 이 책도 그때 치열하게 독서하면서
유 작가가 인생의 책으로 꼽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보통의 사람들이 한번은 들어봤을 듯한 질문에 대한 답을
E. H. 카(작가)가 답변한 것을(정확하게는 강의한 내용을) 묶어서 책으로 낸 것이다.

작가는 과연 역사는 무엇이며, 역사가는 이런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하고,
또 우리는 그런 역사가가 쓴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책이 1960년대에 써진 것을 감안하면
그 당시의 시대상을 잘 모르면(나 역시 여기에 해당하지만) 책이 꽤나 따분하고 재미없을 수 있다.

물론 시대상을 잘 모르더라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상황을 좀 자세히 알고 읽으면 뭔가 더 느낄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고, 이런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사회과학이라기 보다는
정말 공학이나 자연 과학을 다루듯이 그런 과학적 태도로 임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은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좀 어렵고 잘 읽히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번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책이다.


왓칭2 책에 관한 작은 이야기

[한줄평]
속편의 저주일까? 아니면 저자가 너무 자신의 생각에 심취한 것일까?

'왓칭'(shadowxx.egloos.com/10986973)을 재미나게 읽었던 나로서는
왓칭2가 나왔다는 것을 알고 빨리 읽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책들에 의해서 후순위로 밀려났고, 그래서 이제서야 왓칭2를 읽었다.

그런데 왓칭과 달리 왓칭2는 저자의 중심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여러 사례들을
너무 뭔가 아전인수격으로 갖다 붙인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흡사 (물론 이렇지는 않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믿으세요, 내 말이 진실입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그런 세계를 못 봐서 그렇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왓칭2 책 읽기가 참 재미없어져 빠르게 읽어버렸다.
(그렇다고 중간에 책을 덮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나도 참 어지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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